과연 노동은 사형선고를 받았는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전 세계적 실업이 최고 수준에 달하고 있으며, 노동이 신기술혁명의 희생양이 되어 죽어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8억명 이상의 실업자나 잠재적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15~64세의 생산가능 인구 중 군인, 재소자를 제외한 2004년 우리나라 고용률은 지난해 59.8%로 외환위기 직전인 97년의 60.9%에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없는 경제성장시대

냉전이 끝난 이후 인류사회를 괴롭혀 온 핵심 문제 중 하나는 일자리 문제이다. 현재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기회로 여겨지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위협적이고 점점 더 고통스러운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20-80사회' 곧 기술혁명으로 고용 없는 경제성장이라는 새로운 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노동자 없는 사회, 소수의 고용과 다수의 실업사회를 예견하고 있다. 결국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을 선언하였다. 과연 노동은 사형선고를 받았는가? 그렇다면 노동의 종말 이후의 세상은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인가? 아니면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세상인가? 그렇다면 죽어라고 일해도 살 수 없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극은 어떻게 되는가?

최소한 제레미 리프킨에 의하면 오늘날 신기술의 증대에 따른 노동시간의 단축과 노동기회의 감소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기술의 발전은 삶의 질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리엔지니어링과 자동화로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기회의 박탈이라는 우울한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무한 경쟁을 의미하는 세계화는 기업으로 하여금 생존전략으로서 노동력의 극대화를 도모하게 하였고 결과적으로 세계화는 기술의 발전과 작용하여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박탈하는 구조조정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최근의 노동과 관련된 동향을 살펴보면 먼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업들은 일자리를 줄여나가고 있다. 즉 기술혁신을 통하여 기업들은 노동인력을 줄이고도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있다. 기업체들은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하여 임시직이나 적시고용에 의존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 모든 국가에서 한편으로는 생산성이 향상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용 불안정이 증가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 결과 만족스러운 성장률을 유지하면서도 매우 높은 실업률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일할 능력이 있지만 교육수준이 낮은 사회계층들은 일자리 부족으로 인하여 더욱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들은 영구 실업자로 전락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그로 인해 사회의 양극화와 불안이 고조될 것이다. 새로운 첨단 기술혁명은 정보와 기술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야기하고 소수 엘리트 지식노동자와 기업경영자들이 첨단의 국제경쟁의 혜택을 누릴 때, 하위 소득계층은 물론 중간 소득계층은 리엔지니어링의 충격에 상처와 분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갈수록 더욱 더 적대적 진영으로 양극화 할 것이다.

사회 붕괴의 징조로 번져

이미 사회 붕괴의 징조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더욱 더 위험사회로 치닫고 있다. 수많은 빈민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범죄와 폭력에 빠져 들며 새로운 거대한 하위문화를 형성하여 실질적으로 심각한 위협적 존재가 되고 있다. 이는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생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항상 폭발의 소지를 안게 되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실업 문제는 21세기 초의 중요한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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