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대한민국을 분노로 들끓게 했던 지적 장애인 인권 유린 사례인 ‘신안 염전 노예사건’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에 충북 청주에서 또다시 ‘축사 노예사건’이 발생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충북 청주 청원경찰서는 이름도 없이 ‘만득이’로 불리던 지적장애인을 19년 간 ‘축사 노예’로 부린 농장주 P씨(68) 부부를 장애인복지법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7은 장애인의 정신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신체적, 정서적 학대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고, 위반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해자 P씨 부부에 의해 '만득이'로 불렸던 피해자 K씨(48·지적장애 2급)는 지난 7월 1일 오후 9시 45분경 청주시 오창읍의 한 공장 건물에 들어가려다 사설경비업체 직원들에게 적발돼 인근 지구대로 인계됐다.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1997년부터 농장주 소유의 축사에서 노예 생활을 한 사실이 확인되었고, K씨는 19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P씨 부부는 1985년 충북 청주시 오창읍 1만9834㎡(약 6000평)의 터에 축사를 지어 소 40여 마리를 기르기 시작했고, 소를 매매하면서 알게 된 A(사망)씨에게 약간의 사례금을 주고 1997년 K씨를 데려왔다.

 

K씨는 1997년 여름 천안의 한 농장에서 일하다 행방불명 된 이후 올해 7월까지 6.6㎡(2평)의 축사 옆 쪽방에서 기거하면서 소먹이를 주고 분뇨 치우는 일과 농장주 부부 소유의 밭에서 허드렛일 등의 강제 노동을 했다. 강제 노역에 대한 임금을 19년 동안 전혀 지급받지 못했고, 농장주 부부는 지적장애 2급으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K씨를 축사에서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두면서 폭행과 학대를 일삼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피해자 K씨를 상대로 전문 사회복지사 입회하에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과정에서 경찰은 K씨로부터 “소똥을 치우는 게 싫었고, 주인에게 매를 맞은 적이 있다”는 구체적 진술과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P씨 부부가 식사를 제때 주지 않고, 머리를 쥐어박는 등의 학대정황을 확보했다.

 

또한, 경찰은 K씨의 몸에 있는 긁힌 흉터와 다리의 수술 흔적 등이 폭행이나 학대에 의한 것인지 규명하기 위해 정형외과에 정밀검진을 의뢰하여 지속적인 학대와 가혹 행위가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조사와 더불어 K씨가 축사에서 강제노역하고도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만큼 정상적인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 자문을 통해 도울 계획이며,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K씨 집을 방문해 법륜자문과 지원을 약속했고, 청주시는 K씨 가족에게 3개월 치 생계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인권 유린 우려사업장에 대한 실태조사 필요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7월 18일 청주 지적장애인의 19년 ‘축사 노예’ 사건과 관련하여 “인권유린 우려가 있는 사업장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지사는 “현장에 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만 관심있게 봤다면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며 “지난 19년 동안 많은 사람이 그 농장에 갔을 텐데, 관심이 부족해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지사는 “앞으로 지적장애인 가정은 특별히 더 신경 써야 하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양희 충북도의회 의장은 이날 축사노예 사건 피해자 집을 방문해 위로했다. 김 의장은 “천인공노할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가슴 아픈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빈다”며 “소외계층을 더 꼼꼼히 살피는 계기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충북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청주시 등 도내 11개 시·군을 통해 등록 장애인의 주소지 거주 여부파악을 위한 실태조사에 나설 예정이며 소재불명 장애인 전수조사를 추진한다.

 

청주시는 올해 4월 1차 조사에서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거나 소재가 불분명한 300여명의 등록 장애인을 찾아냈고, 이들에 대한 2차 조사를 추진 중이다. 청주시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후속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도청 관계자는 “청주시를 제외한 도내 시·군이 등록 장애인 전수 조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장기 소재 불명 장애인 실태를 우선 파악한 뒤 모든 장애인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축사 노예사건’과 ‘신안 염전 노예사건’과 관련해 지적장애인에 대한 인권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실태조사와 국민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성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7월 28일 성명을 통해 “장애인 인권침해 근절을 위해서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과 행동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장애인을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인식하고 차별 없이 대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축사 노예사건’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의 한 단면”이라며 “강제 노역이나 폭행 등 인권 침해를 받아도 스스로 구조 요청을 할 수 없는 장애인에 대한 지역 사회의 무관심, 장애를 이용해 부당이익을 취하는 문제, 지적장애인에 대한 보호체계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했다.

 

장애자권익옹호기관 설치···가해자 처벌 강화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에 대한 노동 착취와 인권 유린이 재발하지 않도록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철폐연대는 7월 21일 충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9년 청주 ‘차고 노예’, 2014년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의 가해자는 집행유예와 낮은 벌금 등으로 면죄부를 받았다”며 “19년 전 피해자가 실종되었을 때 경찰이나 행정기관이 신속하게 대처하고 더 관심 있게 지켜봤다면 이번 사건은 미연에 막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충북도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심적·경제적 지원책 마련과 지적 장애인의 사회적 생존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사회 장애인 인권침해 근절을 위해 중앙 및 광역단위 지자체에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설치, 장애인 학대의 조기 발견을 위해 ‘장애인 학대 및 장애인 대상 성범죄 신고의무직군’ 대폭 확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금지행위를 추가하고 벌칙조항을 신설해 나갈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역사회의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의 조기 발견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신고가 가장 중요하다”며 취약계층인 장애인의 인권보호를 위한 지역사회의 신고 활성화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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