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문제는 더 이상 지체하거나 시장에 맡겨둘 수 없는 중차대한 과제들이다. 20대 국회는 복지 논쟁이 생산적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이루어 질수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정창률 교수
정창률 교수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최근의 다른 선거와 달리 복지 이슈들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던 선거였다. 지난 선거에서 무상보육이나 기초연금 등 복지 이슈들이 선거의 핵심적인 쟁점으로 등장하였던 것에 비해서 이번 선거에서 각 정당들은 복지 공약에 대해서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는 이번 선거 자체가 정책 선거가 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기초연금이나 공무원연금 논쟁을 거치면서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복지정책이 주요한 이슈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복지정책의 위상이 20대 국회에서 약화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지난 10여년 동안 복지정책이 지나치게 정치 쟁점화되면서 결과적으로 여당과 야당이 올바른 복지정책 방향을 찾는데 고심하기 보다는 복지정책 결정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데 지나치게 집착하여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주도권 쟁탈전 이후에는 대부분의 이슈들이 원래 의도했던 목적이 상실된 채 형해화 되는 과정을 반복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서 복지정책이 이슈로서 전면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복지정책의 내실을 기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성급하게 기대해본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비록 복지정책이 주요한 이슈가 되지는 않았지만 복지 이슈는 20대 국회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핵심적인 국가 과제이다. 이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단기적인 과제부터 지금은 그 필요성이 보이지 않지만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장기 과제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 글에서는 개별 복지정책에 대한 내용보다는 큰 틀에서 20대 국회가 풀어나가야 할 우리사회 복지정책 방안을 단기 과제에서부터 중장기 과제까지 다루도록 한다.

 

보육예산 느는데 아이 맡길 곳 있나

 

20대 국회가 복지정책에 대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은 복지에 대한 불신을 낳을 수 있는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없애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이후 계속되고 있는 누리과정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책임 논쟁에 대해서 이제는 명확한 해답을 내놓을 때이다. 우리나라처럼 지방정부의 재정독립성이 약한국가에서 기초연금 확대, 기초생활보장 확대, 보육 확대 등 중앙정부의 정책 결정으로 인해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누리과정 문제 역시 이에 가세하며 서로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복지에 대한 가치 논쟁 자체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누리과정 등 재정책임에 대한 논쟁은 가치 논쟁이 아닌 정치적 기싸움에 지나지 않으며 국민들에게 복지에 대한 불신만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 세 야당 등은 주요한 복지공약으로서 누리과정의 중앙정부 책임을 내세운데 반해서 여당은 이에 대해서 아무런 입장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칼자루를 쥔 여당이 이 문제를 해결할 아무런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복지정책을 형해화 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이렇게 복지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계속되는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상대방과 토론하면서 국민들의 복지 불신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20대 국회의원들에게 바라는 것은 복지정책의 수립과 개혁에서 이해당사자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하여 공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20세기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수립한 영국의 베버리지 경이 쓴 보고서에서는 복지국가의 제 1원칙으로 '이해당사자로부터의 결별'을 거론하고 있다.

 

사실 저자는 학생 때부터 왜 이 구절이 1원칙이 되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보면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사실상 민간 이해당사자들에게 포획되어 본래 정책의 목적이 퇴색되고 있는 형국이다.

 

보육, 장기요양 등 공식적으로 영리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은 물론이고 의료처럼 외형적으로는 비영리기관만 참여하는 사업까지도 사실상 민간 이해당사자들이 복지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간에 보육이나노인장기요양 등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정부재정 부담의 최소화를 위해 영리기관의 참여를 사실상 제한 없이 허용하여 결과적으로 민간 기관들이 난립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한번 난립하게 되자 그 이후로는 보육이나 노인장기요양정책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무력화시키는 저항들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방에서는 공공보육시설 설립에 대해서 민간업자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들에 대한 협박까지 일삼는 실정이며, 장기요양시설들의 경우 회계공개 요청에 대해서까지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보육과 노인장기요양의 경우 연간 15조원 가까운 공공자금이 투입되고 있는데 정부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민간 업자들의 눈치나보는 실정이다. 의료의 경우에도 작년 건정심을 통해서 의원급 병원에서 차등수가제가 폐지된 것은 의료기관들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인정한 결과이다.

 

그 상황에서 피해자는 복지정책의 수혜자인 국민들이다. 무상보육이 이루어지면서 보육시설이 크게 증가하고 관련예산 역시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를 맡길 곳은 여전히 크게 부족하다. 또한 차등수가제 폐지로 의원의 30초 진료 역시 이제는 더 이상 편법이 아니라 적법한 의료행위가 되어 버렸다.

 

이는 보육, 노인장기요양, 의료를 사업도구로만 여기는 영리시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으로서 영리시설 이해당사자의 이해관계와 결별하고자 하는 국회의원들의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나라의 복지는 흔히 하는 말인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끝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다음으로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번 국회는 우리나라 저출산·고령사회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시작하기를 기대한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으로 다른 어떤 사회문제보다도 재앙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현재의 저출산 기조가 단기간에 바뀌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작년에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이 다시 발표되었지만, 그 정도의 정책으로 출산율 상승을 기대할 수는 없다. 또한 재앙적인 수준의 사교육비 문제와 집값 문제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동수당 도입 등 선진국에서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사용했던 정책 수단 등은 재정적인 이유나 포퓰리즘 공세로 인해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아파트 값은 경기부양을 이유로 올려야 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접근으로는 저출산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2060년에 이르면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비중이 40.3%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저출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앞으로 경제성장율 하락은 물론 젊은 세대의 불신과 피해의식 확대로 인해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될 것이다.

 

4차혁명 시대 복지정책 청사진 제시 기대

 

저출산·고령사회 문제는 더 이상 재정투입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를 바라기에는 이미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20대 국회에서는 이 문제는 우리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필수적인 과제로서 적극적인 재정투입을 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들이 제시되어야 하고, 재정이 부족하다면 금융시장 투자로 낭비되고 있는 국민연금 기금의 적극적 활용 -기금을 회수하는 투자 형식에 한정-까지 고려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20대 국회는 최근 커다란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는 4차혁명 시대의 복지정책 청사진을 제시하여야 한다. 알파고 대국 이후 우리나라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미 기술적으로는 2045년이 되면 인간이 인공지능을 탑재할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4차혁명은 인공지능 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 파괴적인 기술발전은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를 대부분 기계가 대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자본주의 사회 자체의 종말까지 예상되고 있다.

 

특히 이 4차혁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이다.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이 분야에서 산업적 경쟁력을 찾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4차혁명이 야기할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복지제도의 정비 역시 동시에 다루어져야 한다.

 

물론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여 대다수가 실업자가 될 것이라는 공포는 산업혁명부터 존재하였고 그 문제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으나 작년 다보스 포럼 등에서 최근의 4차혁명은 과거 기술발전의 충격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서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사회보험을 기초로 보호하고 빈곤층은 공공부조로 해결하려고 하는 전통적인 복지정책은 시대변화에 조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따라서 이번 국회에서는 4차혁명 시대에 우리나라가 갖출 산업 경쟁력에 대한 입법활동을 하여야겠으나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우리의 복지제도가 어떠한 패러다임 전환에 직면하게 될 지에 대해서도 논의 역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복지 과제부터 중장기 과제까지 살펴보았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복지 과제들은 산적해 있는데 지난 국회에서 일반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은 '복지는 갈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인식될 정도로 불필요한 논쟁들로 점철되어 왔다.

 

그러나 복지 문제는 더 이상 지체하거나 시장에 맡겨둘 수 없는 중차대한 과제들이다. 20대 국회는 복지 논쟁이 생산적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이루어 질수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 이 기사는 월간 복지저널 2016년 4월호(통권 9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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