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류 사회에 팽배한 성장주의 신화, 그에 관한 맹목적 광신(狂信)을 넘어 통합적인 사회 전략을 마련할 때다.

안상훈 서울대학교 교수
안상훈 서울대학교 교수
한국 복지 70년사(史)

 

광복이후 대한민국은 효과적인 국가발전전략을 작동했다. 정부주도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이 대표적이다. 이 와중에 복지는 따로 생각할 것도 없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경제성장으로 복지욕구가 속속 채워진 것이다. 그 결과, 한국적 현상인 '지체된 복지국가'가 잉태되었다.

 

이승만 정부에서 전두환 정부에 이르는 시기는 공공부조 중심의 선별주의적 최소복지 단계다. 이 때는 복지가 매우 가난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선별적으로 시행되었다. 생활보호사업을 중심으로 해서 '자격 있는 빈자(deservingpoor)'들인 독거노인,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의 가장 밑바닥 빈곤층에게 복지가 주어졌다. 권위주의 정부가 주도한 막강한 성장정책 덕분에 국가차원에서는 괄목할만한 부의 축적이 이루어졌다. 동시에,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작동됨으로써 전국민의 지속적인 소득증가가 실체적 복지를 대체하였다.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 김영삼 정부 시기까지는 사회보험 중심의 보편주의적 규제복지 단계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진전된 정치적 민주화로 기억된다. 시민단체 및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이 계속되었다. 이에 대해 국가는 포섭전략을 실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보험 중심으로 사회복지제도를 보편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복지의 충당을 위한 재원마련에있어서 직접적인 정부지출은 최소화되었다. 대신에 법적 규제에 의한 사회보험에의 가입강제화를 추진하여 '수익자 부담형' 보수주의 복지체제가 나타난다.

 

김대중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에 이르는 기간, 한국 복지국가는 또 다른 변화를 겪는다. 선별주의적 사회안전망 확충단계라 부를만한 변화다.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적어도 복지부문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두 진보정부의 좌클릭이 가시적이지 않다. 대신 '미국 따라 하기'가 이 시기를 대표한다. 미국식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의 강화가 이 시기의 특징인 것이다. 이때부터 자활우선의 복지제도가 강조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 키워드인 '생산적 복지', '참여복지', '능동적 복지', 이들은 모두 잔여적 선별주의에 경도되었다.

 

외환위기 이후의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가 틀을 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전형적인 자유주의형 선별주의 제도이다. 사회보험에서도 약간의 확충이 있긴 했다.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제도의 적용확대 정책들이 그것이다. 당시부터 조금씩 문제상황이 드러나기 시작한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사회서비스 방식의 복지프로그램도 조금씩 도입되기 시작했다. 단 이 경우도 대상은 보편적이지 않았고 취약계층 중심으로 제공되었다.

 

활성화된 복지정치

 

2010년 지자체선거 이후, 지체된 복지국가를 넘어서서 복지국가로의 본격적인 이륙이 시작된다. 김상곤 발(發) 무상급식 공약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복지정치가 본격적으로 활성화하게 된다. 마침내 보수진영의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 의원이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을 추진하고 이에 대해 야권이 무상급식 시리즈로 복지확대의 맞불을 놓으면서 보편복지 논쟁이 클라이막스를 치달았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잔여복지를 주장하면서 무상복지 반대의 기수를 자처한 오세훈 전(前) 시장이었고, 그의 실각 이후 2012년 총선과 대선정국은 문자 그대로 '한국 복지정치의 폭발'로 기억된다.

 

기대치 않았던 복지행보로 중원을 선점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당선 일성 역시 '국민행복을 위한 한국형 복지국가로의 진전'이었다. 하지만 야심찬 첫걸음과는 달리 이후 박근혜 정부의 행보는 선별주의적 사회안전망 확충단계를 본격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시장중시형 재정학자들이 복지정책을 진두지휘하면서 형용모순인 '증세 없는 복지'가 정부의 기조가 되어버린 이후, 복지국가로의 장대한 진전은 사라진 채 성장 중심 전략으로의 회귀현상을 보이고 있는 형국이다.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 등 비상상황의 발발, 그리고 뒤이은 경제침체의 현실화에 대한 대응은 대통령 이름도 아닌 경제부총리의 이름을 딴 '초이노믹스'라는 경제 활성화 정책이었다. 이는 배당과 임금 인상 등을 중심으로 엄청난 현금을 풀면서도하층보다는 상층에 정책효과가 귀착되는 정책으로 드러나고 있다. 성장률의 견지에서는 일부 긍정평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평가할 때는 정부 출범 당시의 복지우선론과는 그 방향성이 전혀 다른 경제정책으로 반전된 것이다.

 

복지가 없이는 두 번째 도약이 힘들어진 것이 시대정신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책기조는 여전히 성장만능주의로 회귀중이다. 그 성장의 내용도 여전히 과거형의 대기업 중심전략이다. '한강의 기적'에 관한 공통의 경험, 기억, 향수가 성장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굳어진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시대적 필요성이나 시대정신에는 답이 될 수 없는 이러한 반(反)미래적인 경향성을 깨지 못한다면 한국의 자본주의도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념은 배제한 채 증거와 사실관계만 본다면, 성장과 복지를 대척점에 두고 흑백론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작금의 정책경향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성장만능주의를 넘어서서

 

성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복지를 배제한 이러한 국가전략이 왜 문제인가? 답은 명확하다. 다른 선진국의 경험을 볼 때 현재 한국의 자본주의가 당면한 주요 문제들은 복지국가를 빼놓고서는 풀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꼭 풀어야할 시대적 과제들은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양극화, 이 세 가지다.

 

첫째, 저출산의 근본원인은 여성인력을 배제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이다. 대학교육까지 남녀 동일하게 투자하면서 노동시장에서는 남성만 선호하는 게 한국의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원칙인 '자유경쟁'에 위배되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성장을 위한 자원이 사람밖에 없는 한국에서 인적자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을 홀대하는 모순, 가부장적

인 한국 자본주의의 인습이다. 이러한 상황을 참다 참다 임계점을 넘어서자 고학력 여성들이 출산을 거부하기 시작하였다. 결혼, 출산, 육아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견디기 힘들어지자 선택한 어쩔 수 없는 보이콧이다. 힘겨운 아동양육은 저출산을 낳고 저출산은 미래 생산인구의 단절로 이어져 우리의 미래를 허물고 있다.

 

둘째, 고령화의 심화는 사회차원에서는 세대 간 부담의 불공정을 낳고 개인차원에서는 오래사는 것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어버리는 문제로 이어진다. 지난 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복지국가의 근간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적절하게 유지되는 세대의 크기, 그러한 인구재생산에 근거한 부담의 공유, 20세기형 사회계약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에 더해 저출산은 고령화의 속도에 액셀을 밟고 있다. 새로운 세대 간 계약의 마련이 긴급한 지금, 성장을 위해서라고 복지국가를 활용할 수 있는 지혜, 성장만능주의를 넘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다.

 

셋째, 로봇과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첨단 대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에 의해 고용없는 성장이 가시화되면서 양극화도 덩달아 심해지고 있다. 양극화의 문제는 정서적 애처로움을 넘어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괴물로 돌변한다. OECD의 최신연구들은 양극화와 불평등이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고 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등 대기업 연구소의 연구들도 사회갈등을 해소할 경우 한국의 GDP가 빠르게 올라간다고 보고한다.

 

이러한 세 가지 숙제들은 우리보다 앞서간 자본주의에서 동일한 골칫거리였다. 자본주의의 수정만이 그 답이라는 사실도 앞서간 자본주의들의 공통경험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한국 보수파의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의 확대 없이는 이러한 문제들을 넘어설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복지국가가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복지국가를 확대하더라도 성공적인 방식으로 확대를 해야 숙제를 풀 수 있다. 비록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가 성장으로 치우친 듯 보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복지'는 더욱 중요한 국가적 의제가 될 전망이다. 2016년은 총선의 해이기 때문이다. 다시 전개될 복지확대의 과정에서 이것들만 잊지 않아도 큰 우(愚)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겨지는 원칙 두 가지가 있다.

 

국민부담의 물꼬를 트자

 

지속가능한 한국형 복지국가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세상에 공짜복지가 없다'는 진리를 추종하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태생자체가 자본주의의 불공정을 수정해서 공정한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복지국가는 '공정성(fairness)'의 자식인 것이다. 따라서 공정성은 그 자체로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원칙이다.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는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조화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세상에 공짜복지가 없다는 것을 함께 인식하는 일이다. 물론, 현세대를 위한 무상복지는 국채발행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러한 복지전략은 재정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최근의 그리스가 그런 사례이고 오래된 예로는 경제강국에서 후진국으로 추락한 아르헨티나를 들 수 있다.

 

의무 있는 곳에 권리 있다는 현대국가들의 헌법정신은 복지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복지발전에 부응하는 수준의 세금, 보험료, 이용료의 납부를 통해서 부담과 복지의 조화를 기해야만 공정한 복지가 가능한 것이다. 북유럽과 대륙유럽의 고부담 고복지 전략,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중부담 중복지 전략, 동아시아 국가들의 특징인 저부담 저복지 전략은 이러한 원칙에 부합한다. 단, 복지수준이 낮은 경우 자본주의의 난제를 풀 수가 없다는 것이 함정일 것이다. 과거의 아르헨티나와 현재의 그리스처럼 저부담 중복지나 저부담 고복지를 추구하는 것은 부담과 복지의 부조화를 잉태하는 복지포퓰리즘이다. 국채발행을 통해서 현세대는 복지로 잔치를 벌이고 후세대에 빚잔치를 물려주는 불공정한 복지전략이다.

 

한편, 부담만 공유한다면 우리나라도 북유럽과 같은 고복지를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준과 속도를 조절하는 중부담 중복지 정도의 한국형 전략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북유럽과 한국은 단순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가 처한 복지국가의 거시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웨덴이 복지국가를 야심차게 확대한 것은 자고 일어나면 성장하는 자본주의 황금기였다.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선진자본주의는 위기를 반복해서 경험 중인 이른바 자본주의의 정체기를 지나는 와중이다. 복지확대의 시간적 배경이 경제적 황금기와 침체기로 갈리는 나라들의 전략이 달라야 함은 매우 단순한 추론일 것이다.

 

고령화 문제를 겪는 모습도 두 나라는 다르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비슷한 경제수준의 과거 스웨덴에 비해 5배 이상 빠른 상황이다. 65세 이상 노인비중이 전체 인구대비 14%에서 20%에 도달하는 데 스웨덴이 42년 걸린 데 비해 한국은 8년 만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복지국가 지출은 연금이나 의료서비스를 통해 대부분 노인들을 위해 쓰여질 수밖에 없다. 스웨덴과 한국에 똑같은 수준의 복지권이 존재한다고 상정할 때 한국복지지출 증가속도는 스웨덴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감당할 의사가 국민들에게 있느냐 하는 점이다.

 

최근 남북관계가 준전시 상황에서 극적 반전을 겪었다. 통일 시나리오에 따라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남북한 이후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확대를 통한 사회통합전략을 가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단된 적도 없는 스웨덴과는 달리 한국은 통일을 대비해야만 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추산가능한 통일비용의 대부분은 북한주민을 위한 복지비용으로 사용될 것이 분명하다.

 

만약 북한정권의 급격한 붕괴와 급격한 흡수통일을 상상해보자. 북한 인구를 대략 2000만명으로 잡고 그 절반이 남한 기준 절대빈곤 상황이라고 하자. 4인 가구로 250만 가구가 기초생활보장대상이 된다. 가구 당 100만원의 급여가 주어진다고 해도 당장 매월 2조5000억원, 당장 내일부터 해마다 30조원의 복지비가 더 든다. 빈곤해서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그만큼 돈은 더 들것이 분명하다. 2015년 대한민국의 총복지지출이 116조를 조금 넘는데, 흡수통일 과정에서의 복지비용이 얼추 비슷해질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부담은 누가 할 것인가? 미래를 생각한다면 증세 없는 복지 전략은 '통일불가론'의 동의어일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국민들의 복지 부담에 관한 의사를 살펴보자. 한국인의 사회정책 욕구 및 인식을 추적한 서울대학교 사회정책연구그룹의 조사 개요를 보면 다음과 같다. 거의 90%의 국민들이 소득격차가 너무 크다고 보며, 70~80%가 소득격차를 풀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옛 한나라당 버전의 잔여복지나 2012년 야권연대의 무상복지에 비해서 중도적인 선별전략이 과반을 차지한다. 한편,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필요성에 동의하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으며 선별복지에 동의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복지정치가 가동된 이후 보편복지나 무상복지의 고부담 고복지 보다는 중부담 중복지 전략이 힘을 얻는 형국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정치적 예산제약'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방향성은 취약계층을 우선하는 긍정적 선별주의 전략이다.

 

사회서비스로 일자리를 늘리자

 

이러한 예산 제약을 볼 때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두 번째 조건이 중요해진다. 다름아닌 '사회서비스(social service) 강화 전략'이 그것이다. 사회보장기본법을 보면, 한국의 사회보장은 일반적인 복지에 더하여 교육, 양성평등, 노동시장, 문화, 환경 등을 포괄하는 정책영역이다. 이를 크게 나눠보면, 현금이전 프로그램과 사회서비스 프로그램으로 대별된다. 현금이전에는 연금이나 실업급여 등 현금성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와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데모그란트를 포함한 각종수당이 들어간다. 사회서비스는 양로나 육아 등 돌봄문제, 교육문제, 주거문제, 고용문제, 보건의료문제, 환경문제 등의 해결을 위한 공공서비스로 이뤄진다.

 

주류경제학에서는 현금급여와 사회서비스를 동일욕구에 대한 기능적 등가물로 보면서 개인효용 극대화를 위해서 현금급여를 쓰는 게 더 좋다고 본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을 보면, 현금과 서비스는 정치적·경제적으로 상이한 결과를 잉태한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복지국가 성과를 비교한 경험연구들에 의하면, 북유럽전략에서의 정치경제적 지속가능성이 높게 나타나는데 북유럽의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사회서비스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는 주류경제학의 기본가정들과 다른 결과다. 요컨대, 주류경제학의 사고방식에는 모종의 복지패러독스가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복지를 주려거든 현금으로 주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현금복지는 근로동기를 침해해서 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한다"면서 복지확대를 경계한다. "복지지출에 돈을 많이 쓰는 나라들은 경제성과가 매우 떨어질 것이다, 성장률이 낮아지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등등 소위 '복지병' 혹은 '유럽병'에 관한 신자유주의의 근로동기 침해론이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근거하는 것이 오로지 현금복지라는 사실이다. 사회서비스에 해당하는 교육이나 건강에 관한 수많은 경제학적 실증연구들이 밝힌 것처럼, 복지, 고용, 교육, 건강 분야의 다양한 사회서비스는 실업률을 낮추며, 고용률, 특히 여성고용률을 높이는 효과가 가시적이다. 한편, 어떤 복지건 확대해야만 불평등 계수인 지니계수가 낮아진다.

 

요컨대, 현금복지보다는 사회서비스복지를 통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지속가능한 복지전략이다. 사실 사회서비스 중심전략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미 꽤 튼실하게 자리 잡은 정책기조다. '1·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등을 통해 다양한 사회서비스가 확대되었고, 박근혜 정부의 고용과 복지의 결합을 통한 성장과의 선순환 전략도 이러한 기조를 따르고 있다.

 

자유 시장과 자본주의를 견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가발전전략이라고 치자. 일해서 먹고 살아야지 복지로 먹고 살아선 안 된단 경구(警句)가 옳다손 치자.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정당하려면 강한 전제가 필요하다. 일하고 싶을 경우엔 언제나 알맞은 일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개인의 자립에 기댄 자본주의적 성장을 위해서라도 충분한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하지만 '노동의 종말'이 현실인 상황, 첨단화된 한국경제라 시장에서는 일자리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 때 유효한 유일한 처방전은 사회서비스복지를 늘리는 것이다.

 

사회서비스복지의 장점은 한두 개가 아니다.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맡음으로써 가족적 의무에서 여성을 해방시켜야 저출산이 해결된다. 노인도 일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개발한다면 생산세대의 부담은 그만큼 줄어든다. 근로취약계층도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게 사회서비스분야이고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는 양극화 완화에 도움을 준다.

 

선거의 계절, 좋은 복지를 창출하자

 

사회통합이 좋은 것이라면 미래 한국의 모습은 사회통합을 이루고 갈등이 적은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자본주의의 세 가지 난제를 풀지 못하면 미래형의 사회통합은 없다. 자본주의의 세 가지 난제를 한국의 미래사회가 적절하게 감당하기 위한 유일한 방도는 '바람직한 복지국가 전략'을 더 늦지 않게 가동하는 것이다. 한국 주류 사회에 팽배한 성장주의 신화, 그에 관한 맹목적 광신(狂信)을 넘어 통합적인 사회 전략을 마련할 때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인가? 선진국 경험에 기댄 증거기반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선거승리에 목숨 건 정치인들의 선택이 심히 우려되는 순간이다.

 

* 이 기사는 월간 복지저널 2016년 1월호(통권 8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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