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과 2005년에 걸친 제2의 정립회관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립공대위'가 이완수 소아마비협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목요집회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완수 이사장은 "비리가 있으면 법적으로 해결하면 될 것"라며 격앙된 심

본지는 앞으로 우리나라 사회복지계의 쟁점을 쫓는 심층인터뷰를 게재할 예정이다. 복지계 이슈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을 초대, 사건이나 쟁점을 해부하고 진실에 다가서려는 기획시리즈다. 형식이나 절차, 인터뷰 대상이나 게재주기는 따로 정하지 않고 그때 그때 만나고 싶은 사람,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인물로 이완수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장을 만났다.

2004년과 2005년에 걸친 제2의 정립회관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올 2월, '정립회관 민주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231일간의 농성 끝에 서울 광진구청의 중재안에 서명함으로써 일단락된 듯 했던 정립회관 사태는 이완수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또 다른 파행을 낳고 있다. '정립공대위'가 이완수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매주 목요집회를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립회관 사태는 '정립공대위'의 주장이 많이 알려져 사태의 전모를 완전히 파악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다. 사태의 또 다른 핵심당사자인 이완수 이사장 측의 의견이 상대적으로 적게 알려진 탓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이완수 이사장을 3시간여 걸쳐 만나 '제2의 정립회관 사태'의 진실과 실체에 접근하려 했다.

이완수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장은 제2의 정립회관 사태는 법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완수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장은 제2의 정립회관 사태는 법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완수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장은 제2의 정립회관 사태는 법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제2의 정립회관 사태'와 관련해 이완수 이사장을 인터뷰할 생각은 없었다. 이 이사장이 일본 사회복지기관인 '아시히가와소'에서 주는 '아시아 의료복지상'을 수상해, 소감을 들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상'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짧게 끝마친 후 '정립회관' 사태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한이 맺힌 듯 했다. 전임 정립회관장으로서, 현 소아마비협회 이사장으로서의 입장을 술술 풀어냈다.

-지금까지 정립회관 사태와 관련한 이 이사장의 입장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사태를 설명하고 해명하지 않아 손해를 많이 봤을 것이다. 사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립회관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있고, 그들이 직원의 권익이나 회관운영과 관련해 시정을 요구하면 들어줄 것은 들어준다. 그러나 들어줄 수 없는 것도 있다. 노조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 결국 이용자의 몫을 빼앗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김장보너스와 관련, 티격태격했다. 운영자 입장에서는 직원들에게 더 많이 주면 좋겠지만, 사정이 어디 그런가. 그래서 수영장이 완공되면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협상이 결렬됐다."

-관장임기와 관련한 것이 아니었나. 관장임기 만료를 앞두고 정년제를 갑자기 임기제로 바꾼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정립회관 규정에 맞게 절차를 밟았다.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 3년 임기제로 바꾼 것은 정년제로 할 경우 40대에 취임한 관장이 20년동안 관장직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다."

-왜 하필 임기만료를 목전에 두고 정관을 개정했나. 시기적으로 충분히 오해소지가 있었다고 본다. '오이밭에서는 신발끈을 고쳐매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임기제를 도입하면서 나는 임기를 채울 생각이 없었다. 정관개정 당시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마침 사무국장도 정년에 걸려 그만둬야 했다. 한 기관의 장과 사무국장이 동시에 그만두면 기관 운영에 애로사항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소아마비협회 이사회에서 나를 임시촉탁직 관장으로 선임, 새 관장이 올때까지만 맡을 것을 권고했다. 정관개정 시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법적으로는 크게 문제 될게 없었다."

-아무리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하지만 도의적으로는 문제가 있지 않나. 이유야 어지됐든, 임기만료를 앞두고 규정을 뜯어 고쳐 관장직에 계속 머물겠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 이사장은 정립공대위 쪽에
이 이사장은 정립공대위 쪽에

이 이사장은 정립공대위 쪽에 "자신에게 비리가 있다면 법적으로 해결하라"고 요구, 자신의 결백을 재차 확인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더 하겠다고 나선 일도 아니다. 이사회에서 정립회관의 사정을 두루 고려해 결정한 일이었다. 알다시피 정립회관은 수영장을 건립중이었다. 그런데 사무국장이 공석이 된 상황에서 관장까지 그만두면 일할 사람, 책임 있는 사람이 모두 나가는 꼴이니, 업무의 연속성에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판단이었다. 한 부처의 장관이 바뀌면 차관인사는 늦게 하는 것이 관례가 아닌가. 관장임기를 정년제로 규정한 정관은 누구라도 고쳐야 했다. 3년 연임제로 바꾼 일은, 적절한 조치였으나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을 뿐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꼴이다."

-항간에는 이사장이 폭력배를 동원, 정립공대위 농성자들을 폭행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많은 사람들은 '정관개정'보다 이 문제를 두고 말이 많았다.
"검찰 등 사법당국이 증거가 없다고 무혐의 처분을 내린 내용이다."

-정립공대위와 곰두리봉사회가 물리적 충돌을 빚지 않았는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을 것 같은 그들이 왜 정립회관 사태에 개입했나.
"곰두리봉사회는 정립회관을 모체로 탄생했다.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와 함께 소아마비협회 사무총장이 당시 곰두리봉사회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정립공대위가 정립회관을 점거 농성을 벌이면서, 곰두리봉사회 업무파일이 들어 있는 총장의 컴퓨터를 압수했다. 그래서 곰두리 쪽에서 '내놔라'고 요구하고, 정립공대위 쪽에서는 '못준다'고 하는 실랑이 끝에 컴퓨터를 돌려받았다. 이때 곰두리 쪽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잠을 자며 농성하는 중증장애인들을 보고, '장애인 학대가 아니냐'며 못마땅해 했다. 그래서 성수동에 있는 민주노총 무슨 지부엔가에 집회신고를 냈는데, 그곳에 있어야 할 노조원들이 정립공대위 농성장에 합류했다는 얘기를 듣고 정립회관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나.
"나와 박경석 정립공대위 대표를 불러놓고 합의를 보라고 했다. 양쪽 모두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열흘 안에 해결하라고 했다. 해결이 안 되면 무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도 했다. 폭력사태 발생 운운하는데, 한쪽은 '맞았다'고 하지만, 한쪽은 '자해행위다'고 주장하는 등 완전히 상반된 입장이어서 흐지부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정립회관 쪽에서 그들을 끌어들였다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 있다. 바로 곰두리 소속 회원들의 식대를 정립회관쪽에서 지불했다는 영수증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명할 수 있나.
"그것은 당시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다. 나는 그때 교회에서 새벽 예배를 보고 있었었는데 정립회관 쪽에서 '사태가 해결됐으니, 빨리 회관으로 들어오라'는 전화가 왔다. 구순이 넘은 아버님을 택시 태워보내고, 부랴부랴 회관으로 들어왔다. 와서보니, 다시 원점이 되어 있더라. 정립회관 직원도 연락을 받고 대부분 나와 있고, 곰두리 회원들도 보이고…. 아무튼 밥은 먹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 새벽에 식당을 수소문해 배달을 시켰다. 30인분인지, 40인분인지 가지고 왔더라. 밥값을 줘야 하는데 규정상 10만원 이상은 현금결제가 안 된다. 배달원에게 '날이 밝으면 식대를 주겠다'고 하니, '이 새벽에 밥시켜 먹고 무슨 외상이냐'며 인상을 쓰더라. 그래서 경리가 정립전자에 들어가 폰뱅킹으로 식대를 모두 지불했다. 누구누구 밥값을 구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중에 곰두리 쪽으로부터 그들이 먹은 식대는 돌려 받아 정당하게 회계처리를 했다. 광진구청에서도 오해를 풀은 부분이다."

이 이사장은
이 이사장은

이 이사장은 "소아마비협회 이사장직은 이사회에서 절차에 따라 선출했으므로 일방적으로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정립회관은 장애인의 자립생활 이념을 처음 도입하고 전파한 곳이다. 자립생활을 위해선 활동보조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정립공대위에 참가한 중증장애인의 활동보조인을 끊어 비난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보복성 조치로는 너무 심했던 것 아닌가.
"(격앙된 표정으로)활동보조인을 뗐다는 것은 정립공대위측의 자작극이다. 마침 활동보조인사업은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넘어간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정립회관의 사업에서 없어져 활동보조인이 끊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한국소아마비협회 산하기관으로 정립회관과 같은 식구아닌가. 신경를 썼다면 중증장애인의 발을 묶었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일은 없었지 않았겠는가.
"정립회관장이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이 아니다. 자립생활센터 소장의 권한도 있는 것인데 '콩놔라 팥놔라' 할 수 있나. 소장이 핫바지인가."

-올 7월부터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것이 정립공대위 쪽을 또 다시 자극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정립회관에서 매주 목요일 집회를 열고 있는데….
"먼저 정립공대위 쪽에서 전임 송영욱 이사장 댁에서 시위를 한 것을 지적하고 싶다. 세상에 어떻게 모친상을 당한지 며칠 안된 집앞에서 시위를 할 수 있나. 오죽하면 이사장 따님이 '제발 아버님을 그만 놔 달라'고 사정했겠는가. 갑작스럽게 전임 이사장이 사퇴하고, 김정희 이사장 권한대행체제(부름의 전화 대장)로 가고 있었다. 이사회를 열어 후임 이사장을 선출하는데 나보고 '당신밖에 없으니 이사장 하라'고 하더라. 솔직히 나는 쉬고 싶었지만, 이 와중에서 나만 살겠다고 떠나는 것이 잘하는 일일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부득이 이사장직에 올랐다."

-다른 방안은 없었나.
"김정희 이사장권한대행에게 '대행' 떼고 이사장직을 맡으라고 권유했으나 '이사장을 맡으라고 한다면 이사까지 그만두겠다'며 완강히 고사하더라. 외부 영입도 검토했다. 그러나 위상이 추락할대로 추락한 이곳 이사장을 맡겠다고 누가 선뜻 나서겠느냐. 예를 한번 들어보자. 정립회관 사무국장을 2차까지 공모했는데, 1차에 떨어진 사람까지 4명만 응모하더라. 관장도 6명만 응시했다. 옛날에는 직원 한명을 뽑는다고 하면 금세 100여명까지 몰리던 것과는, 정립회관이 너무 다른 위상에 처해있는 것을 헤아려 달라. "

-소아마비협회 이사회에서 당신을 이사장으로 선출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소아마비협회 모체인 삼애회 발기인 중 한 사람인 것과 아울러 12년동안 정립회관장직을 수행하면서 전임 이사장을 대신해 많은 업무를 대과없이 대행한 것이 인정받지 않았겠는가. 또 비리나 부조리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며) 나는 한번도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적이 없다. 한번은 장애 3급인 4촌 동생이 '정립전자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온 적이 있다. 숫자도 안 잊는다. 정립전자에 들어오려는 대기자수가 무려 198명이더라. 얼렁뚱땅 이력서를 앞 순위로 밀어넣으면 안될 것도 없겠지만, 단호하게 '대기자 수가 너무 많아 곤란하다'며 거절했다. 그때 친지들한테 '항의전화' 많이 받았다(웃음). 동생에게 '구직활동에 쓰라'며 몇 개월동안 용돈을 준적이 있다."

-이사장의 고집도 참 세다. 여느 사람 같으면 지긋지긋할 텐데, 혹시 관장직과 이사장직이 '밥벌이 수단'은 아닌가.
"날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나는 돈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 월급이나 판공비도 그대로 집에 갖고 가지 않는다.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충분히 먹고 살만하다. 자식들도 '자신들이 모시겠다'고 하지만, 얘들한테도 손 안 벌린다."

이 이사장은
이 이사장은

이 이사장은 "자신은 마음을 비웠지만 지금 당장 홀가분하게 정립회관을 떠날 처지는 못 된다"고 밝혔다. -정립공대위 쪽에 할말은 없는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민주화, 민주화 하는데 무엇이 민주화이고, 비민주화인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특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집단논리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장애인들도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 나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증거를 대고, 법적으로 하라. 비리가 있어 징계를 받는다면 당장이라도 나간다. 자기들이 나에게 '나가라, 들어가라' 할 자격이 있나. 내가 '정립공대위를 해체하라'고 하면 해체하겠는가."

-지난 2여년동안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 같다. 앞으로도 어떻게 사태가 전개될지도 모르고…. 지금의 심경은 어떤가.
"부덕하다는 생각이 있다. 책임은 있지만 원인이 있고, 제공자도 있다. 나는 일방적인 피해자이면서 억울하다. 신변의 위협도 많이 느끼고 명예도 많이 실추됐다. 도의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져야 하지만, 집단논리에 의해 쫒겨나는 선례를 남기긴 싫다."

-왜 정립회관 사태 초기에 당신의 입장을 명쾌하게 밝히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때 언론이나 다른 통로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면, 사태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모를 일이었다는 생각이 있다.
"지나고 보니, 진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게 후회되기도 한다. 일례로 한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에서 박경석 공동대표를 두번이나 인터뷰했다. 내가 반론권 차원에서 방송시간을 할애해 달라고 방송사 측에 요구했다. 그랬더니, 방송사에서는 박 대표와 함께 하는 조건으로 시간을 내줬다. 공정하지 않았지만 응했다. 박 대표가 그동안 일방적으로 주장한 잘못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니까, 진행자가 앞으로 정립회관 사태와 관련한 방송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겠다고 하더라. 조금 더 일찍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끝으로 할말은 없는가.
"누가 임기를 마치고 명예롭게 물러나고 쉽지 않겠는가. 나도 자리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장기집권이 바람직스럽지 않고,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주의도 아니다. 이제 마음을 비웠다. 그러나 홀가분하게 장애인계와 정립회관에서 뜰 입장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심경의 변화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사장은 폭력사태 유발, 활동보조인 지원 중단, 정립회관 관장 임기연장 등 그동안 제2의 정립회관 사태의 핵심현안이었던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나섰다.
이 이사장은 폭력사태 유발, 활동보조인 지원 중단, 정립회관 관장 임기연장 등 그동안 제2의 정립회관 사태의 핵심현안이었던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나섰다.

이 이사장은 폭력사태 유발, 활동보조인 지원 중단, 정립회관 관장 임기연장 등 그동안 제2의 정립회관 사태의 핵심현안이었던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나섰다.

◇이완수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장 프로필
△1939년 생 △1958년-1966년 월전 장우성. 남정 박노수 선생 사사(동양화) △1959년 이승만 대통령 송수서화전 특선 △1960년-1967년 제9,10,12,13,14,15,16회 국전 입선 △1966년-1977년 한국소아마비협회 아동특수보육협회 이사 △1962년-1971년 제11,17,18,19,20회 국전 특선 △1963년-1971년 제1,2,3,4,5,6,7,8,9,10,11회 청토전 출품 △1972년-1974년 제21,22,23회 국전 출품 △1977년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 △1989년-1993년 서울증권 고문 △1983년 대만장애인협회 고문 △1984년 한국장애인연맹(한국DPI) 발기인 겸 고문 △1993년 정립회관 관장 △1994년 장애인탁구협회 부회장 △1994년-2002년 일본 쯔야마휠체어역전마라톤 경주대회 한국대표선수단장 △1995년 미국장애인 US 오픈 탁구대회 단장 △1995년-2001년 일본 후쿠오카 이나오배 장애인소프트볼대회 단장 △1996년 일본 동경 장애인 좌식배구대회 단장 △1997년 제4회 서울시민대상 수상 △1997년 '환경모범도시 광진21' 추진위원 △1999년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경제학과 수료 △1999년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경제학과 동문회장 △1999년 서울시민대상 수상자회 부회장 △1999년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발전위원 △2001년 국민포장 수상 △2002년 일본고베 장애인야구대회 한국선수단 단장 △2003년 한국장애인스포츠협의회 고문 △2003년 중국연변잔질인연합회 고문 △2005년 사회복지법인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장 △2005년 사단법인 곰두리봉사회 특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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