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모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입니다. 노인을 긍정적으로 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차흥봉 세계노년학회(IAGG) 회장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이후 노인을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짐이나 부담으로 여기는 시각이 팽배해 있어요.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에요. 노인은 모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입니다. 노인을 긍정적으로 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일하면서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고령자 자립사회의 모습입니다."

 

차흥봉(71) 세계노년학회(IAGG·International Association of Gerontology and Geriatrics) 회장은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집무실에서 "노인들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꾼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고령사회를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과 기회의 장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차 회장은 지난 6월 2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노년학·노인의학대회 이사회에서 IAGG 회장으로 선임됐다. 이번 20차 대회의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회장 선임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IAGG 회장 외에도 그는 2011년부터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 7월에는 임기 3년의 국제사회복지협의회(ICSW) 동북아지역회장으로 선출돼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IAGG에서 회장으로 선임됐습니다. IAGG는 어떤 일을 하는 곳입니까.

 

"1950년 창설된 IAGG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년학·노인의학 관련 학회로 유엔 공식 자문기관입니다. 노인문제 연구와 교육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생산함으로써 전 세계 노인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처럼 4년마다 장소를 바꿔가며 대회가 개최되며 올해 서울 대회에 이어 201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차기대회가 열립니다. 인구 고령화는 이제 예전처럼 선진국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고령 인구가 늘고 있습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60세 이상 노인수는 8억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중국 한 나라에만 60세 이상 인구가 1억80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205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20억 명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22%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이렇게 인구 고령화가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에 IAGG 회장을 맡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고령화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세계노년학회에서는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지요.

 

"지난번 서울에서 열렸던 대회에서도 전 세계 노인문제 전문가 5000여 명이 모여 노인문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는데 가장 큰 주제는 '지구촌 인구 고령화. 과연 축복인가, 도전인가'였습니다. 여기서 도전이란 단어에는 노인 인구의 증가가 우리 사회에 짐이 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노인은 노쇠하고 병든 존재여서 큰 부담이 된다. 또 연금과 의료보험 등 국가 재정만 축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인을 우리 사회의 자원으로 보면 그 같은 부정적인 시각도 변하게 됩니다."

 

―어떻게 고령층을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원으로 볼 수 있는지요.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요즘 노인은 의료수준 향상 등에 힘입어 대부분 건강합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고령 인구가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입니다. 노인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활동인구. 즉 노동력이 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노인들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일하고 자립할 수 있는 쪽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금, 의료비용의 지급을 생애과정의 끝으로 더 밀어내야 합니다. 일을 하면 연금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전대미문의 인구 고령화와 노인 인구 증가가 향후 세계경제발전에 큰 변수로 등장할 것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다가오는 고령사회를 경제성장동력 확보의 새로운 장으로 파악하고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 세계에이징센터를 한국에 설치 운영하는 것입니다. 세계에이징센터는 정부와도 이미 사업 논의를 마쳤고 설치타당성 조사를 위한 연구비까지 지원받았습니다."

 

차 회장이 구상하고 있는 세계에이징센터는 전 세계 고령화사회 및 노인문제에 관한 국제적 연구 허브기관이다. 그러나 이 기관은 동시에 전 세계 고령친화산업의 연구·개발(R&D)센터도 겸하고 있다. 차 회장이 세계에이징센터가 21세기 한국이 먹고살 수 있는 '미래 신동력 산업'을 이끄는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세계에이징센터의 그 같은 기능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창조경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무한한 노인 자원을 대상으로 한 산업을 일궈내는 것이야말로 창조경제의 대표적인 사례 아니겠습니까. 노인 인구가 향후 20억 명을 넘게 되면 노인 화장품부터 노인들을 돌보는 헬스케어 산업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노년층의 일자리 만들기가 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어떤 대안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일각에서는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태에서 노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는 '제로섬' 게임 양상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2050년쯤 되면 한국에 65세 이상 인구가 18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보다 무려 1200만 명이 많은 수치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의 출산율을 감안할 때 노인 숫자가 늘어나지만 반대로 청년층 인구는 자꾸 줄기 마련입니다. 노인들이 일을 해서 그 공백을 메워줘야 합니다. 아마 그때가 되면 일할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년 연장'이나 '임금 피크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해결방안은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특히 '사회 서비스' 형태의 일자리라면 더 좋겠죠. 예를 들면 노인이 노인의 말벗을 해주는 '노노(老老) 케어 서비스'도 그중 하나입니다."

 

―최근 노인 자살이 사회문제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통사회에서 살아온 대부분의 노인들은 가정에서의 지위도 약화됐고, 그렇다고 부를 축적한 것도 아닙니다. 이 때문에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심지어 자식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노인들도 많고요. 노인 우울증이나 자살도 그래서 발생한다고 봅니다. 이분들에 대해선 국가에서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노인 복지 정책을 강화해 이분들을 품어 안고 가야 합니다. 소외감이나 고독감 등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하고, 독거노인을 위한 '케어 서비스'도 강화해야 합니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나서서 이분들을 위한 사회 서비스 네트워크를 강화해 간다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차 회장은 복지 분야 전문가로 평생 외길을 걸어왔다. 그에게 우리 사회 복지 정책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복지가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되며 선거철마다 복지 관련 공약이 넘쳐나는데요. 우리 복지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제언을 하신다면.

 

"우리나라는 복지정책이 급격히 발달한 나라로 그 발달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연금, 건강보험, 공공부조, 사회 서비스 등 사회복지 분야의 제도와 프로그램 등이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사회 복지시설만 해도 6·25전쟁 당시 200여 개였던 것이 지금은 16만 개로 늘어났습니다. 복지 분야 재정 지출도 1980년대 초에 국내총생산(GDP)의 0.1%였지만 지금은 10%에 이릅니다. 등산에 비유하면 한국의 복지정책은 현재 7분 능선을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남은 일은 무엇일까요. 여태껏 만들어온 제도와 프로그램, 즉 프레임(틀)을 잘 유지하며 내실을 기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복지 혜택의 전달 체계를 촘촘하게 만드는 것도 내실을 기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가 생기거나, 중복 혜택이 돌아가는 일을 사전에 충분히 방지할 수 있습니다."

 

―한국형 사회복지모델을 찾는 과정에서 아직도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복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복지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또 복지 혜택을 주고받을 때는 개인의 책임과 존엄성이 전제로 깔려 있어야 합니다. 복지는 공짜가 아닙니다. 공짜가 좋다고 해 '무상'으로 베푸는 것은 국민을 '거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복지정책이 우리보다 발달했다는 스웨덴에서도 어린이집은 무상이 아닙니다. 비용의 일부를 학부모가 부담합니다."

 

그는 '경제성장과 사회복지의 균형발전'이 항상 본인이 주장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복지는 시장경제체제(자본주의)하에서의 개인 책임을 강조하며 국가가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쪽으로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 이경택 부장대우(전국부) ktlee@munhwa.com

 

 

◇ 차 회장은 누구

 

보건복지 '50년 외길' 장관시절 '의약분업' 지휘

재무부 마다하고 보사부로 "어린시절 가난이 밑천"

 

차흥봉 세계노년학회 회장은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보건복지 분야에서만 50년을 보낸 '보건복지통'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청년기의 공직 생활 대부분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보냈다. 대학에서도 사회복지학을 가르쳤고, 공직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노년학회 회장,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으로 현장에서 뛰고 있다.

 

특히 차 회장은 1999년 5월 24일부터 이듬해 8월 6일까지 1년 2개월 남짓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지만 당시 우리 보건복지사에 큰 획을 그을 현안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빚었던 '의약분업'을 진두지휘했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건강보험통합 등 굵직한 보건복지 분야 시책들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차 회장은 자신이 '사회복지'라는 외길을 걷게 된 배경을 어린 시절의 '가난'에서 찾고 있다. 차 회장은 1942년 경북 의성군 의성읍의 30호 남짓한 농촌마을에서 숙명처럼 가난의 굴레를 쓰고 태어났다. 남부초교와 의성중을 졸업한 뒤 가족을 따라 대구로 이사해 사대부고를 다닐 때도 가난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엔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몸을 눕혀야 했기 때문에 다리도 쭉 펴고 잘 수 없었다고 한다.

 

가난은 그로 하여금 진지하게 삶을 생각하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대학(서울대)에 진학하면서 사회학과를 선택한 것이나, 졸업 후 첫 직장이었던 청와대를 나오면서도 '물 좋은' 재무부 등을 마다하고 '가장 인기 없는' 보건사회부로 간 것도 그처럼 삶의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에서 시행되는 사회복지 제도와 프로그램 대부분이 내 손을 거쳤다"며 "주변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연금을 받으며 어려운 처지를 이겨나가시는 분들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북 의성 출생(71) ▲서울대 사회학과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박사 ▲보건사회부 보험제도과장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노년학회 회장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보건복지부 장관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국제사회복지협의회(ICSW) 동북아지역회장 ▲세계노년학회(IAGG) 회장 ▲청조근정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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