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만병통치의 선거철입니다. 재원 마련 방안을 말하지 않고 복지만 늘어 놓지는 말아 주십시오. 책에만 있는 복지 이야기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

김지영 회장
김지영 회장
김지영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회장

 

"노인복지의 꽃은 재가노인복지사업이다"

 

노인복지 라는 단어를 좀 아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입니다. 사회복지학과 교수들이 재가노인복지영역의 첫 장 에서 흔히 하는 말씀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재가노인복지 사업을 노인복지의 꽃이라고 추겨 세우는 이 말씀의 뒷면에는 재가 노인 복지사업현장의 힘겨운 현실들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저희 일은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 한분 한분을 직접 만나서 손을 잡을 때 시작 됩니다. 생활고와 정서, 심리적 불안정을 이유로 고립된 어르신을 손 잡고 피부 접촉하며 도시락을 전해 드리면 어르신 입가에 미소가 핍니다. 그래서 노인복지의 꽃이라 할 만 하지요. 또한 어르신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독립된 인격체로서 인권을 보호 받으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며 목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역시 노인복지의 꽃입니다.

 

치매 어르신이나 와상으로 누우신 어르신들의 기저기를 갈며 실질적 돌봄을 하는 것도 저희 재가노인복지사업의 중요한 영역입니다. 어르신 수발로 지쳤던 가족이 도움을 받고 힘을 다시 내게 하는 것도 저희의 일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의 최후의 안전망, 최일선에 저희 재가노인복지사업 종사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인복지사업의 꽃은 재가노인복지사업이다" 라는 단어는 사회복지 책 속에만 있는 죽은 문장입니다. 현실에서는 다른 어떤 노인복지 사업보다 비용은 많이 들면서 생색은 나지 않는 그래서 정치인들에게 그다지 흥미가 없는 영역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한꺼번에 수백 명 모아 잔치를 벌이는 일은 정말 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바깥 출입을 못하시는 어르신께 한 번의 외출은 오랜 가뭄 끝의 단비 같은 것이지만 어르신 한 분에 자원봉사자 한 명, 그리고 사고를 대비한 각종 안전장치까지 하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우울증으로 자기세계에 갇혀 있는 한사람의 어르신을 방 밖으로 한 걸음 내딛게 하기까지는 수십 번의 방문이 필요합니다. 역시 돈이 많이 들지요.

 

힘을 갖고자 원하는 사람들은 다수의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이 중요하지, 힘이 없는 몇몇 사람들 소리를 듣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숫자가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선거철에 저희가 목소리를 내도 반응이 없습니다. 반면 힘을 갖게 된 사람은 숫자보다도 보여 지는 것에 돈을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말씀 드렸듯이 저희 일은 돈은 많이 들고 보여 지는 것은 적은 일입니다. 그래서 또한 저희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곤 합니다.

 

정치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지 못하다 보니까 저희 재가노인복지영역의 종사자들은 임금 수준이 다른 노인복지 영역보다 낮고 자연히 이직율도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는 젊은 사회복지사들도 열악한 근로 환경과 생활인으로서의 부담이라는 이중고로 안타깝게도 오래 버티지를 못합니다.

 

이직률이 높다는 말은 전문성을 갖은 종사자가 적다는 말이고 이는 곧 어르신들에게 가는 서비스의 질에 대한 논란거리를 제공합니다. 오늘 받으신 도시락이 어르신이 이 세상에서 드시는 마지막 한 끼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어르신께 전달하고 왔는지, 그 서비스가 어르신께 적절한 것이었는지, 그 외에 무슨 서비스를 해야 했는지 내용을 점검할 전문 인력을 키워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선후보들에게 대선공약 요구사항을 써 달라는 제의가 저는 참 공허하게 느껴져 오래 망설 였습니다. 형식적인 것, 의례적인 것, 상투적인 것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하고 읽지도 않을 글을 머리 싸매고 고민하기도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것은 오직 젊은 재가노인복지 종사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소망 때문입니다.

 

저희 재가노인복지사업의 첫번째 숙제는 노인복지전달체계의 총정리를 통한 역할과 기능의 재정립입니다. 이는 재원의 문제가 아니고 철학과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후보 한 분이라도 깊게 고민하고 의지만 있다면 실현 가능 제1순위라 믿습니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국가의 긴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는 수시로 관련영역에서 많은 사업을 쏟아 냈습니다. 복지부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부, 행정안전부, 여성부 등에서 비슷비슷한 내용의 사업들을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각 부는 상대방이 무엇을 하는지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따로 따로 사업들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큰 틀에서 계획과 논의 없이 중앙과 지자체의 편의에 따라 집행 기관들이 선정되었고, 그 결과 노인복지 사업의 중복과 분절 왜곡이 만들어낸 사각지대가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노인복지 영역 간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혼란은 물론 기관 간의 갈등 조짐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삼성에서 사회공헌팀을 맡고 계신 분이 삼성그룹이 그렇게 많은 돈을 사회공헌에 내고 있는데도 사회에서 느끼지 못하는 점을 안타까워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노인을 위한 예산은 매년 가파르게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의 생계불안은 여전하고 복지 체감도는 매우 낮으며 사상 최대의 노인 자살률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재정투입의 확대가 복지전달체계의 정비 없이 계속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산은 낭비 되고 성과는 미비한' 노인복지전달체계를 장기적 관점에서 비전을 갖고 심도 있게 검토하면 각 집행체계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리라 믿습니다. 각 영역이 전문성을 갖도록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재정의 누수도 막고 재원 투입의 극대화를 기대할 수 있으며 복지 체감도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재가노인복지종사자들을 전문가로 교육해 주십시오.

 

두 번째 숙제는 노인 장기요양보험과 돌봄 사회서비스 등의 시장화 현상에 대한 개념 정립과 정리입니다.

 

공급을 자유화시켜 소비자의 선택폭을 넓히고 공급자의 서비스 품질 개선을 가져오겠다는 논리가 휴먼 서비스(human service)에서 그대로 적용되도 될까요? 특히 노인이나 장애인 유아 등 취약계층의 돌봄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완전 시장'에 맡겨도 될까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구입했다가 맛이 없으면 안 먹고 버린다거나 하루 청소를 부탁했다가 시원찮으면 다른 업체로 바꾸면 되는 시행착오가 가능한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다루는, 그것도 기능상 제약을 지닌 취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입니다. 공공성에 기반한 대상자의 이해와 경험이 있는 공급자에 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에 '유사시장' 개념을 적극 도입 하고 또한 공공성 확립 방안을 함께 논의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재가노인복지 사업에서 예방사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무한정한 재정 투입은 삼척동자도 다 알다시피 불가능합니다. 재정 투입이 예측 가능해야 그 사회가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소득이 적은 노인, 건강이 나쁜 노인에 대해 집중되었던 소극적 재가노인복지사업을, 소득과 건강의 경계선에 있거나 그 보다 넓은 범위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적극적 예방 사업으로 과감히 확대해 주십시오.

 

어르신 한 분이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진입하는 속도를 일 년만 늦추면 평균 한 달에 90만 원씩 일 년 약 1,000만 원, 100명이면 10억, 1,000명이면 100억의 지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나아가 IT 등 국가 선도 산업에 접목한 치매 등 인지개선 프로그램의 개발과 재가에서의 시범사업은 전 지구가 고령화 되어가고 있는 현 시점에 국가 유망 수출 산업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재가노인복지사업의 패라다임 전환과 과감한 투자를 기대합니다.

 

모든 단어 뒤에 민주화를 붙이던 시기가 지나고 대부분의 단어 뒤에 복지를 붙이는 복지 만병통치의 선거철입니다. 재원 마련 방안을 말하지 않고 복지만 늘어 놓지는 말아 주십시오. 책에만 있는 복지 이야기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 더욱이 외국은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싫증 납니다. 우리의 문제를 찬찬히 진정성을 갖고 들여다 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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