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뛰어넘어야 한다.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꽃피워질 수 있다.

최성규인천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최성규인천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담임목사2010년 11월 11일은 서울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 날이라 의미가 깊다. 그런데 매년 11월 11일이 '지체장애인의 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소위 '주요국'에 속해 있다. 지난 8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베스트 국가' 순위에서 15위를 기록했다.

동시에, 9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 이슈앤포커스'에서 발표한 'OECD 회원국의 장애인 복지지표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0점 만점에 15점으로 회원국 중 최저점수를 기록했다. 경제적으로 성장한 우리나라는 이제 사회적으로도 성숙해야 하는 때임을 시사한다.

사회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함께 사는 사회를 꿈꿔야 한다. 아니 꿈을 넘어 구체적으로 함께해야 한다. 말로는 함께해야 한다고 한다. 함께해야 좋다는 것도 잘 안다. 이를 위한 노력으로 많은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배려한다. 장애인의 처지를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장애인의 날 정도에만 그런 마음이 반짝한다. 혹은 그들을 위해 시간을 내기보다는 편리한 돈으로 대신하려 한다. 물론 서로에 대한 긍휼과 사랑 없이는 지갑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한다면 함께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 가족은 항상 함께하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연인은 항상 함께하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금은보화로도 바꿀 수 없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보다 귀한 것은 함께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할 때 가능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한다는 것은 장애를 장애로 보지 않고 차이로 보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었다(창 1:26-27). 사람은 하나님과 다르며,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에는 하나님의 형상, 즉 신적 이미지(Imago Dei)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차별금지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자로 여겨야 한다. 남들과의 차이로 인해 위축되거나 자아존중감이 없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함께 사는 것은 차이의 존중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차이를 뛰어 넘어야 한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뛰어넘으셨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히 여기지 않으셨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뛰어 넘으셨다. 그리고 피조물인 우리와 함께하셨다. 우리가 되어 십자가에 달리셨다(빌 2장).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셨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여 함께 계시는 중에 '우리(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창 1:26) 우리(인간)를 만드셨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님은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임미엘)으로 오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임마누엘)으로 오셨다(마 1:23). 혼자가 아닌 우리가 모인 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11월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욱 함께 살기를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뛰어넘어야 한다.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꽃피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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