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KBS 공익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의료비지원이 안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여러 가정이 소개되었다.

정정섭 기아대책 회장
정정섭 기아대책 회장

정정섭 기아대책 회장얼마 전 KBS 공익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의료비지원이 안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여러 가정이 소개되었다. 이 프로를 보면서 사회복지계에서 일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느낀 바가 많아 이 기회에 몇 마디 하려 한다. 겉으로 보기에 그 가정은 멀쩡한 가정이다. 아버지가 없다는 것 말고는 딸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다른 딸들도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살아가는, 그야말로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평범한 가정이다.

그런데 그 속을 한 꺼풀 벗겨 보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정부의 생활지원금이 필요한 빈곤가정이다. 그러나 노동할 수 있는 어른이 한 명 있다는 사실 때문에 법적으로는 정부의 생활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세 딸의 어머니는 건강이 안 좋아 의료비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의료비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머니의 병명을 밝힐 수 있는 진단을 하려면 큰 딸의 아르바이트비를 훨씬 넘어서는 진찰비가 소요되는데 이 때문에 어머니는 병원에 갈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의료비감면대상으로 선정되려면 법이 정한 수준 이하로 더 가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이 가정의 의료비감면대상 적용을 막고 있는, 좀 심하게 말하면 어처구니 없는 조건이 되고 있다. 악순환이 쳇바퀴 돌 듯 돌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의료보장 사각지대 현황 및 해소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의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는 국민이 12%인 576만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488만 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드러난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것 중에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가난도 있겠지만 이 글 서두에서 언급한, 덜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의료비감면혜택을 못 받아 병원을 찾지 못하고 병을 계속 키워가는 경우가 있다.

어느 정책이건 빈틈이라는 건 있을 수 밖에 없다. 정책이란 그 빈틈을 얼마나 최소화하고 적절히 대처해 나갔는가에 따라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의료사각지대라는 말은 흔히 듣던 말이다. 그러나 중상위계층이 얇아지고 빈부 격차가 넓어지면서 의료사각지대의 심각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의료비감면혜택이라는 것은 절대빈곤층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른바 차상위계층 국민에게 필요한 수혜인데 덜 가난하다는 이유로 수혜대상에서 빠지거나 수혜규모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모든 대상을 만족시키는 정책이란 있을 수도 없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반드시 성공적인 정책의 필수요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의료사각지대 문제에 있어 경제적으로 약간의 도움을 더 주면 되는 사람들이 많아 수혜대상을 넓히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된다면 실효성과 함께 정책의 타당성도 많은 국민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 소지라 믿는다.

많은 NGO들이 의료비지원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본인이 대표하고 있는 기아대책도 국내는 물론 해외 의료비지원을 필요로 하는 대상들에게 시기적절한 의료지원을 하고자 지난 9월 초 '생명지기(Saving Life)'위원회를 창립하고 이와 관련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의료기금모금만이 아니라 의료지원을 해 줄 수 있는 병원, 전문의료인력, 기업, 교회, 후원자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의료지원을 받고자 하는 빈곤계층들이 어디서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생명지기' 같은 의료네트워크가 더 많이 세워져서 빈곤계층 국민이 의료 지원부분에서만이라도 고통 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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