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 넘어 떠도는 구름처럼/정처 없이 거닐다/ 나는 보았네/ 호수가 나무 아래/ 미풍에 너울거리는/ 한 떼의 황금빛 수선화를/…/ 무연히 홀로 생각에 잠겨/ 자리에 누우면/ 고독의 축복인 내 속눈으로/ 홀연 번득이는 수선화/ 그 때 내 가슴은 기쁨에 차고/ 수선화와 더불어 춤추노라.

누구나 한번쯤 대해본 적이 있는 영국의 낭만주의 서정시인 워즈워드의 수선화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를 떠올리지 않고는 이 시를 감상할 수 없다.

업무에 대한 애정도 높혀야

나르시스는 마법에 걸려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너무 사랑하게 되고, 결국 죽어 수선화로 남는다는 신화 속 인물이다. 이러한 나르시스적 자기애는 지나치면 불행해지지만 적당히 유지하면 자존감을 유지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나아가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이끌 수 있고, 남의 사랑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사회복지계 현실은 사회복지인들에게 나르시스적 자기애는 커녕 이 아름다운 계절에 워즈워드의 시 한편 감상할 여유도 없게 만들고 있다. 도시근로자 월평균 임금의 60%수준의 연봉에, 평균 근로시간 56시간이라는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이러한 근로조건에서는 아무리 천사같은 사람들도 사회복지에 대한 애정을 갖지 못할 것이고, 서비스나 후원개발의 의욕도 생길 수 없다. 온몸을 던져 사회복지를 사랑하는 애정을 유지할 수 있을 때, 평생을 봉직해도 아깝지 않겠다는 소속 기관과 시설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때, 그리고 이렇게 일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있을 때 후원개발은 활성화될 수 있다.

후원개발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자기를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사회복지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지속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사회복지계에 투신하는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돈을 많이 벌겠다거나, 사회복지를 통해 큰 권력을 갖겠다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 어느 분야보다도 뜨거운 인간애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복지계 업무에 종사한다. 이들이 초심을 잃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후원개발자들 스스로 자신의 철학이나 가치를 성찰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환경적으로 그들의 숭고한 초심을 유지시키는 노력도 함께 가야 한다.

특정 기관에서 후원업무를 담당하면서 그 기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의 이념과 가치를 깊이 체화하여 자부심을 갖고 있을 때, 사람들이 왜 자기 기관의 사업에 동참해야 하고, 왜 사람들이 자기 기관에 후원을 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는 일종의 나르시스적 자기애의 과정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과 소속 기관, 그 기관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확신을 갖는 일은 후원개발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특히 기관에서 후원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기관에 대한 헌신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기관들은 후원개발 직원이 소속되어 있는 기관의 사명과 기관장의 철학과 가치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소외계층 삶의 질 향상돼

나아가서 정부는 이들 사회복지인력들이 애정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일선 사회복지인력들이 사회복지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소외계층들의 삶의 질도 향상되고, 국민들이 행복해진다. 지금과 같은 열악한 조건에서는 애정은 커녕 자기비하와 절망감에 빠져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일선 사회복지인력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후원개발이 활성화되면 결과적으로 전체 사회복지총량이 확대되어 사회전체에 유익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식했으면 한다. 사회복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정이 증오로 변하기 전에 사랑의 불꽃을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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