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는 자타(自他)의 인간관계는 서로 타인(他人)을 부정하는 상극관계라고 보았다. 즉 타자(the other)를 자기에 대한 타인으로 한정한다면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은 항상 문제와 갈등의 시작이다. 자기는 선이고 타인은 악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타인은 언제나 지옥이다.

그러나 '너와나'의 저자 부버는 자타의 인격적 관계와 비인격적 관계를 구별하여, 전자의 관계에서 타자는 '나'에 대한 2인칭인 '너'이며, 후자의 관계에서는 타자가 3인칭으로서의 '그'나 '그것'이라고 보았다. 즉 너와 나의 인격적 만남은 타자의 인격이 나에 의하여 대상화되고 물화되는 관계로 보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인간과 신의 관계는 비인격적인 관계일 때는 절대적인 타자이지만, 인간이 신을 받아들일 때 2인칭의 인격적인 관계에 들어서게 된다고 본다.

후원자와 인격적 만남 이뤄야


후원개발 과정에서도 후원자를 단순히 비인격적인 존재로 보게 되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타인에 불과하다. 무관한 관계의 타인은 사회복지조직에 후원할 아무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타인은 모두 잠재적 후원자이며, 우리에 의해 대상화되는 인격적인 존재이다.

사회복지조직에서 후원자를 일방적인 캠페인 대상으로 보느냐 혹은 상호만족을 위한 개발 대상으로 보느냐에 따라 관계가 비인격적이 될 수도 있고 인격적이 될 수도 있다. 캠페인지향적인 모금은 기업들이 일방적인 판매(sales)하는 것과 같다. 반면에 개발지향적인 모금은 마케팅을 통해 관계를 개발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사회복지조직의 욕구에 집착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기부해 줄 것을 요구하는 일방적인 행위이다. 개발지향적인 접근에서는 후원자의 욕구와 선호를 파악하고, 그들이 교환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선 고려한다.

캠페인의 대상은 전체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들의 어려운 상황을 호소하여 후원을 얻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개발지향적인 접근에서는 특정 개인과 집단을 대상으로 표적으로 삼아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후원하는 사회복지조직으로부터 일년에 한번 정도만 소식을 듣기 원할 수도 있다. 이들은 후원자의 익명성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오른손이 한 선행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원자들은 다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후원하는 사회복지조직의 활동을 정기적으로 보고 받기를 원한다. 자신들이 기부한 것에 대해 명시적으로 인정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나아가서 다른 사람에 비해 더 크게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개발지향적인 접근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인정한다. 후원자마다 각기 다른 욕구가 있음을 인정하고, 모든 후원자를 동일하게 취급하기 보다는 차이를 반영한 차별화된 관계를 형성한다.

캠페인적인 후원개발은 일종의 집요한 판촉행위이다. 후원자의 감정이나 만족도 등은 고려하지 않고 거의 강제하다시피 후원을 요청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후원자의 욕구를 이해하면 할수록 관계의 개발에 힘쓰게 되며, 공격적인 전략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강요된 후원을 하는 경우, 마지못해 한번의 기부는 하지만 후원자의 감정은 후원과 동시에 관계를 단절하고 싶은 마음인 경우가 많다.

상호만족 얻는 관계 형성하자

따라서 후원개발은 타인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는 개발적 접근이어야 한다. 후원개발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이 아니라 상호만족을 얻는 관계인 것이다. 관계가 개발된 후원은 지속성과 강도에 있어 일회성의 후원보다 훨씬 크고 오래간다. 사회복지조직의 열악한 현실을 넘어서 타인 속으로 건너가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사회복지의 인생을 바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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